우리는 왜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 없는 삶에 실패하는 걸까?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쓰레기에 대한 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나 기사들을 보며 밀려오는 충격.
이런 충격을 느껴보았다면, 필연적으로 함께 따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오늘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또 다시 만들어낸 쓰레기로 밀려드는 스트레스와 자책감.
쓰레기 없는 삶을 다짐한 순간 우리는 이 자책감을 시시때때로 느끼며 살아간다.
우리는 대체 왜 매일 같이 실패하는걸까?
꼭 닮은 다음의 두 사건을 통해 몇가지를 유추해보자.
#1
쓰레기 없는 삶을 다짐해놓고 나도 모르게 만들어 대는 쓰레기로 인해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며 지구의 명운을 극단적으로 비관하는 나에게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이런 말을 던진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놓고 쓰레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지."
나의 청각을 통해 들어온 이 정보는 이내 나의 뇌를 거쳐 분노를 유발하여 눈이 커지고, 콧망울이 넓혀지며, 미간을 좁혀 주름을 만들고, 호흡을 가쁘게 만들며 나의 이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상승하여 혈류가 빨라지며 전투적인 근육으로 태세를 갖춘다.
그리곤 분노의 감정을 언어에 담아 성대를 통해 또박또박 출력해낸다.
"뭐.라.고.요!?
지금 지구는 시시각각 죽어가고 온갖 징후가 들어나서 초단위로 시급한 이때에 선문답이나 하자는거에요?"
#2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부딪히고 걸려넘어지는 나는 옷을 찢어먹기 일쑤다.
결국은 한벌 밖에 남지 않은 바지를 바라보며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리라 노력했지만 오늘도 또 넘어져 바지가 상했다.
결국 한벌 밖에 남지 않은 이 바지도 몇 번 더 넘어지고나면 입을 수 없을 만큼 상할 거고, 나는 다신 집 밖에 못나오게 되리라 비관하는 나에게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이런 말을 던진다.
"안넘어진다고 다짐해놓고 발 주변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지."
나의 청각을 통해 들어온 이 정보는 이내 나의 뇌를 거쳐 분노를 유발하여 눈이 커지고, 콧망울이 넓혀지며, 미간을 좁혀 주름을 만들고, 호흡을 가쁘게 만들며 나의 이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상승하여 혈류가 빨라지며 전투적인 근육으로 태세를 갖춘다.
그리곤 분노의 감정을 언어에 담아 성대를 통해 또박또박 출력해낸다.
"뭐.라.고.요!?
지금 나는 바지가 한벌 밖에 남지 않았고 이 바지를 지켜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노력했더니 그런 말이나 하는거에요?"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면 같은 패턴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닮을 꼴의 진행이라기에 조금 맘에 걸린다면 눈치 없는 조언자의 조언 내용이다.
발 주변만 보며 걷는 것보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장애물을 파악해야 넘어지는 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는 조언은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쓰레기는 당최 우리에게 뭘 어쩌라는 것일까?
쓰레기 없는 삶이 너무도 요원해 답답한 우리이지만, 잠시 심호흡을하고 차근차근 사유를 따라가보자.
나를 걸려넘어지는 직접적인 돌부리는 내가 걷는 길의 아주 작은 구성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줄여나가고 싶은 쓰레기는 대체 어떤 대상의 구성 요소일까?
쓰레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떤 것은 포장이라 생겨났고, 어떤 것은 먹다 남아서 생겨났고, 어떤 것은 고장나서 생겨났으며, 어떤 것은 그 쓰임을 다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어디선가 사온 물건이라는 것이다.
[쓰레기는 분명하게도 '소비'의 구성 요소이다.]
소비와 쓰레기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명확함에도 우리는 대부분 쓰레기 문제를 쓰레기보다 더 세밀한 요소인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질 나쁜 쓰레기인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서 다른 소재의 무언가를 찾고 또 다시 그 소재를 소비하려 한다.
이런 대안 제품의 소비는 쉽게 찾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상황을 통제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결국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쓰레기의 문제에서 실패를 줄이며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의 의미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주 넘어지는 그 친구가 해결책으로 삼았던 발끝만 바라보던 시야는 바로 재화가 교환되는 순간의 '소비'이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포장 없이 구매하고 싶어하고, 1회용품을 거절하고 싶어하지만 판매자의 '습관'처럼 사소한 이유때문에 실패하기도하고,
'기업논리'처럼 거대한 이유로 실패하기도 한다.
쓰레기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바라본 이 점(.) 에서는 최저가, 1+1 등 당장 내 손에 쥐어진 화폐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가장 현명해보인다.
하지만,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을 (-)으로 만들어보면,
'소비'의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화폐와 재화가 교환되는 현장 그리고 물건이 소모되어 폐기되는 시기까지 소위 '제품 생애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되면
우리는 무조건 싼 것을 사는 것보다, 품질이 훌륭한 제품을 구매하여 아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소비임을 깨닫게 되며,
쓰레기의 문제에 있어서도 '썩지 않는 소재'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처분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들여놓던 행동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제품들은 온전히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소모하는 것이 쓰레기 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고확장을 성취할 수 있다.
아껴쓰고 오래쓰는 것은 쓰레기 문제에 혁신적인 결과를 안겨줄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정도의 넓게보기로는 부족하다.
쓰레기의 문제를 알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매력을 줄 수 있는 시야를 가지려면, (-)을 (ㅁ)으로 넓혀보면 어떨까.
구매, 사용, 폐기 각 지점의 좀 더 자세한 사항들을 파헤쳐서 우리의 소비자 정말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팔 필요한 양만큼 구매하고 있는지, 정말 합리적인 지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단계이다.
마케팅으로 인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진 않았는지,
일부러 식상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계획적 진부화에 충분히 더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고 새로사진 않았는지,
편하고 위생적이어보인다는 이유로 반영구 제품이 있는 물건을 1회용으로 사진 않았는지,
또한 이렇게 쉽게 버린 물건들이 결국 처리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고, 올바르지 못한 처리는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세금에서 처리된다는 사실까지.
결국 경제적이고 저렴한 소비를 한다는 것은 넓은 소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하는 소비일 것이다.
그리고 이 건강한 소비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쓰레기를 줄여나간다.
-
실패 앞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한 우리에겐 물론 수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자꾸 넘어지는 길이라고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대체 우리는 왜 매일 같이 넘어지는지 알기 위해 필요한건 '멀리서 바라보는 시야' 일지도 모르겠다.
소비라는 개념이 좁아질대로 좁아져, 일반소비적으로나 제로웨이스트적으로나 너무 내 눈 앞에 가까이 있어 가장 커다랗게 보였던 것들이 있다.
생각보다 심각한 쓰레기 문제에 너무나도 놀란 우린 쉼 없이 쓰레기 자체만을 응시했지만, 그 좁은 영역에서 넘어지고 얻은 많은 상처들에 계속 실천할 수 있을지 고심했을 우리.
이제는 길도 보고 주변의 나무와 사람, 그리고 하늘도 올려다보며 건강한 소비 안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나가보자.
우리는 왜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 없는 삶에 실패하는 걸까?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쓰레기에 대한 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나 기사들을 보며 밀려오는 충격.
이런 충격을 느껴보았다면, 필연적으로 함께 따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오늘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또 다시 만들어낸 쓰레기로 밀려드는 스트레스와 자책감.
쓰레기 없는 삶을 다짐한 순간 우리는 이 자책감을 시시때때로 느끼며 살아간다.
우리는 대체 왜 매일 같이 실패하는걸까?
꼭 닮은 다음의 두 사건을 통해 몇가지를 유추해보자.
#1
쓰레기 없는 삶을 다짐해놓고 나도 모르게 만들어 대는 쓰레기로 인해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며 지구의 명운을 극단적으로 비관하는 나에게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이런 말을 던진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놓고 쓰레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지."
나의 청각을 통해 들어온 이 정보는 이내 나의 뇌를 거쳐 분노를 유발하여 눈이 커지고, 콧망울이 넓혀지며, 미간을 좁혀 주름을 만들고, 호흡을 가쁘게 만들며 나의 이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상승하여 혈류가 빨라지며 전투적인 근육으로 태세를 갖춘다.
그리곤 분노의 감정을 언어에 담아 성대를 통해 또박또박 출력해낸다.
"뭐.라.고.요!?
지금 지구는 시시각각 죽어가고 온갖 징후가 들어나서 초단위로 시급한 이때에 선문답이나 하자는거에요?"
#2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부딪히고 걸려넘어지는 나는 옷을 찢어먹기 일쑤다.
결국은 한벌 밖에 남지 않은 바지를 바라보며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리라 노력했지만 오늘도 또 넘어져 바지가 상했다.
결국 한벌 밖에 남지 않은 이 바지도 몇 번 더 넘어지고나면 입을 수 없을 만큼 상할 거고, 나는 다신 집 밖에 못나오게 되리라 비관하는 나에게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이런 말을 던진다.
"안넘어진다고 다짐해놓고 발 주변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지."
나의 청각을 통해 들어온 이 정보는 이내 나의 뇌를 거쳐 분노를 유발하여 눈이 커지고, 콧망울이 넓혀지며, 미간을 좁혀 주름을 만들고, 호흡을 가쁘게 만들며 나의 이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상승하여 혈류가 빨라지며 전투적인 근육으로 태세를 갖춘다.
그리곤 분노의 감정을 언어에 담아 성대를 통해 또박또박 출력해낸다.
"뭐.라.고.요!?
지금 나는 바지가 한벌 밖에 남지 않았고 이 바지를 지켜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노력했더니 그런 말이나 하는거에요?"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면 같은 패턴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닮을 꼴의 진행이라기에 조금 맘에 걸린다면 눈치 없는 조언자의 조언 내용이다.
발 주변만 보며 걷는 것보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장애물을 파악해야 넘어지는 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는 조언은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쓰레기는 당최 우리에게 뭘 어쩌라는 것일까?
쓰레기 없는 삶이 너무도 요원해 답답한 우리이지만, 잠시 심호흡을하고 차근차근 사유를 따라가보자.
나를 걸려넘어지는 직접적인 돌부리는 내가 걷는 길의 아주 작은 구성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줄여나가고 싶은 쓰레기는 대체 어떤 대상의 구성 요소일까?
쓰레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떤 것은 포장이라 생겨났고, 어떤 것은 먹다 남아서 생겨났고, 어떤 것은 고장나서 생겨났으며, 어떤 것은 그 쓰임을 다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어디선가 사온 물건이라는 것이다.
[쓰레기는 분명하게도 '소비'의 구성 요소이다.]
소비와 쓰레기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명확함에도 우리는 대부분 쓰레기 문제를 쓰레기보다 더 세밀한 요소인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질 나쁜 쓰레기인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서 다른 소재의 무언가를 찾고 또 다시 그 소재를 소비하려 한다.
이런 대안 제품의 소비는 쉽게 찾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상황을 통제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결국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쓰레기의 문제에서 실패를 줄이며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의 의미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주 넘어지는 그 친구가 해결책으로 삼았던 발끝만 바라보던 시야는 바로 재화가 교환되는 순간의 '소비'이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포장 없이 구매하고 싶어하고, 1회용품을 거절하고 싶어하지만 판매자의 '습관'처럼 사소한 이유때문에 실패하기도하고,
'기업논리'처럼 거대한 이유로 실패하기도 한다.
쓰레기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바라본 이 점(.) 에서는 최저가, 1+1 등 당장 내 손에 쥐어진 화폐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가장 현명해보인다.
하지만,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을 (-)으로 만들어보면,
'소비'의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화폐와 재화가 교환되는 현장 그리고 물건이 소모되어 폐기되는 시기까지 소위 '제품 생애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되면
우리는 무조건 싼 것을 사는 것보다, 품질이 훌륭한 제품을 구매하여 아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소비임을 깨닫게 되며,
쓰레기의 문제에 있어서도 '썩지 않는 소재'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처분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들여놓던 행동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제품들은 온전히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소모하는 것이 쓰레기 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고확장을 성취할 수 있다.
아껴쓰고 오래쓰는 것은 쓰레기 문제에 혁신적인 결과를 안겨줄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정도의 넓게보기로는 부족하다.
쓰레기의 문제를 알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매력을 줄 수 있는 시야를 가지려면, (-)을 (ㅁ)으로 넓혀보면 어떨까.
구매, 사용, 폐기 각 지점의 좀 더 자세한 사항들을 파헤쳐서 우리의 소비자 정말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팔 필요한 양만큼 구매하고 있는지, 정말 합리적인 지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단계이다.
마케팅으로 인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진 않았는지,
일부러 식상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계획적 진부화에 충분히 더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고 새로사진 않았는지,
편하고 위생적이어보인다는 이유로 반영구 제품이 있는 물건을 1회용으로 사진 않았는지,
또한 이렇게 쉽게 버린 물건들이 결국 처리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고, 올바르지 못한 처리는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세금에서 처리된다는 사실까지.
결국 경제적이고 저렴한 소비를 한다는 것은 넓은 소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하는 소비일 것이다.
그리고 이 건강한 소비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쓰레기를 줄여나간다.
-
실패 앞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한 우리에겐 물론 수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자꾸 넘어지는 길이라고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대체 우리는 왜 매일 같이 넘어지는지 알기 위해 필요한건 '멀리서 바라보는 시야' 일지도 모르겠다.
소비라는 개념이 좁아질대로 좁아져, 일반소비적으로나 제로웨이스트적으로나 너무 내 눈 앞에 가까이 있어 가장 커다랗게 보였던 것들이 있다.
생각보다 심각한 쓰레기 문제에 너무나도 놀란 우린 쉼 없이 쓰레기 자체만을 응시했지만, 그 좁은 영역에서 넘어지고 얻은 많은 상처들에 계속 실천할 수 있을지 고심했을 우리.
이제는 길도 보고 주변의 나무와 사람, 그리고 하늘도 올려다보며 건강한 소비 안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