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전남일보] 쓰레기문제 본질은 과소비… 낭비않는 문화 자리잡혀야


쓰레기문제 본질은 과소비… 낭비않는 문화 자리잡혀야


▶환경친화도시 광주 만들자 <11> 더 피커
2016년 서울에 둥지 튼 국내 첫 ‘제로 웨이스트’ 마켓
토종쌀·유기농·공정무역 테마삼아 한국형 모델 구축
소비문화 변혁이 목표… 정부·기업과 협업 논의키도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헤이그라운드 902호에 입점한 제로 웨이스트 마켓 '더 피커'의 내부 모습.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헤이그라운드 902호에 입점한 제로 웨이스트 마켓 '더 피커'의 내부 모습.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쓰레기 없는 삶을 표방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어느새 우리 도처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마켓의 시작지인 독일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국내에 문을 열고 있어서다. 그중에서도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소재 ‘더 피커’는 어느덧 4년째 소비문화의 변화를 외치며,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쓰레기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다.


● 국내 첫 제로 웨이스트 마켓 ‘더 피커’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제로 웨이스트 마켓 '더 피커'를 찾은 이용객이 통 안에 담겨있는 곡물을 구매할 만큼만 꺼내기 위해 조작용 손잡이를 당기고 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제로 웨이스트 마켓 '더 피커'를 찾은 이용객이 통 안에 담겨있는 곡물을 구매할 만큼만 꺼내기 위해 조작용 손잡이를 당기고 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4일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소재 ‘더 피커'(The Picker). 이곳은 지난 2014년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마켓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를 모델 삼아 만들어진 식료·생필품점이다. 2016년 1월 대표인 송경호(31)씨가 서울에 개업한 이래 국내 첫 제로 웨이스트 마켓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선구자적 기업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실험을 펼치고자 사회적경제기업, 스타트업 등이 모여있는 ‘헤이그라운드’ 건물에 새 둥지를 틀었다.

더 피커는 ‘수확하는 사람’을 뜻하는 피커(picker)에서 이름을 따왔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상품을 골라 소비자들에게 선보인다는 의미가 담겼다. 아니나다를까, 입구에 들어서자 맨 먼저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벽걸이식 용기가 눈에 띄었다. 포장재에 담겨 팔리는 기성 상품과 달리, 구매자가 직접 원하는 만큼만 사갈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벽걸이식 용기에는 주로 곡물과 견과류가 담겼다. 특색이라면 되도록 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썼다는 점이다. 토종벼를 길러내는 것으로 유명한 우보농장의 쌀과 흑갱, 궐나도 등 토종쌀은 물론 쌀과 현미로 만든 파스타 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기농과 무농약도 주요 수식어였다. 유기농 볶은 아몬드, 무농약 해바라기씨 등이 있었고, 특히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료품 앞에는 공정무역이라는 말이 따라 붙었다. 건포도와 말린 바나나 등 다소 부피가 있는 상품은 벽걸이식 용기 아래 놓인 투명한 상자에 담겨 오목한 주걱으로 퍼가는 식이다. 각각의 식료품에는 무게 당 가격과 원산지, 유기농 등 여부, 생산일자가 적혀있었다.

포장재가 없고, 판매되는 양도 균일하지 않다보니 구매 방식도 조금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매자가 직접 유리병, 면주머니 등 빈 용기를 챙겨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의 무게만 잴 수 있도록 용기를 저울에 올린 상태로 기본값이 ‘0’이 되도록 설정한다. 용기에 상품을 담고 다시 저울에 올리고 품목을 설정, 계기판에 적힌 무게와 가격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거나 메모지에 적어 계산대로 향하면 된다.

식료품 외에도 다양한 친환경적인 생필품이 판매되고 있다. 화학처리 된 플라스틱 섬유 대신 수세미열매로 만든 천연 설거지 수세미와 목욕스펀지, 일회용 비닐봉투를 대신할 다회용 밀랍 푸드랩백, 사용 후 버려져도 완전 분해가 되는 생분해 대나무 칫솔, 플라스틱 빨대의 대체품인 스테인리스 빨대 등이 있다. 천연 고무로 만든 요가매트, 밀겨로 만들어 한 달이면 분해돼 퇴비가 된다는 친환경 일회용 접시도 흥미롭다.

통상 액체 상태로 용기에 담겨 팔리는 것과 달리 고체 형태인 샴푸 바(bar)도 주 판매 상품이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인데, 더 피커에서 판매되는 것들은 여기에 ‘비건'(vegan·완전 채식주의)이라는 성격까지 더해졌다. 흔히 샴푸의 성분으로 소개되는 실크나 케라틴 등은 동물성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실크는 누에고치에서 나오고 케라틴은 동물의 발톱이나 뿔, 깃털 등으로부터 추출된 단백질이다.

아직 포장재 없는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낯선 방문객을 위해 유리병과 종이봉투도 준비해뒀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더 피커 로고가 새겨진 것을 제작해 쓸 법도 한데, 가만 보니 다른 가게에서 쓰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또 하나, 갖가지 용기가 담긴 바구니에는 ‘기부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새로운 방문객보다 앞서 제로 웨이스트 삶에 뛰어든 선배 손님들이 쓰고 남은 종이봉투 등을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재사용 또한 제로 웨이스트의 핵심 키워드다.


● “소비문화 바뀌면 쓰레기 줄어들 것”


더 피커는 국내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마켓이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근래들어 쓰레기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가는 추세다. 국내 제로 웨이스트 마켓의 선구자라는 게 알려지면서는 지자체와 대기업 등으로부터 관련 아이디어 공유 등 협업 제안도 들어온다고 한다.

송경호 대표는 “2015년 창업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이는 것)이 화두였다. 그런데도 쓰레기가 줄지않는 것을 보며 양적 문제에 관심갖게 됐다”면서 “그때 접했던 게 독일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였는데, 이것을 한국에서도 운영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마켓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더 피커를 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 파장이 심상치 않았던 유럽에 비해 국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수익 면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형 모델을 고심하던 중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을 합친 ‘그로서란트'(grocerant) 운영에 나섰다. 성수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색 레스토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사람들 사이에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갔다. 아쉽게도 현재는 그로서란트를 운영하지 않는다. 지난 1일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하면서 부터는 제로 웨이스트 마켓 확산이라는 목표를 두고 실험에 매진하려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더 피커가 이어가는 고민은 어떤 것일까. 송 대표는 “제로 웨이스트는 단지 쓰레기를 덜 만들고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쓰레기가 넘쳐나는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과소비와 과잉생산이 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가 말하는 제로 웨이스트는 ‘저소비’ 내지는 ‘적당한 소비’로 읽혔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버려지는 잉여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소비문화의 변화 만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기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로 웨이스트 마켓은 문화의 변화를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는 더 피커 2호점, 3호점의 브랜드 양산보다, 기존의 상점이 제로 웨이스트화 되는 식의 확대가 소비문화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송 대표는 “이미 몇몇 친환경 식재료점에서는 단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이후에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제로 웨이스트 마켓을 이용해야만 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다음 목표는, 어떻게 하면 기존 상점들에 제로 웨이스트를 적용할 수 있을 지 그 모델을 고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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